본문으로 바로가기

유리, 비누, 직물 등을 비롯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알칼리성 물질인 소다회(Na2CO3)와 가성 칼리(K2CO3)의 효과적인 제조법을 공업화하여 많은 돈을 벌었던 벨기에의 화학자 솔베이(Ernest Solvay, 1838-1922)는 번 돈을 화학, 물리학, 사회학을 연구하는 국제과학연구소를 설립하는 데 썼다. 그는 또한 과학자들의 학술회의를 후원하기도 했다.

 

 

제5차 솔베이 회의(1927, 벨기에 브뤼셀), 세계 물리학계의 거두들이 모이다

솔베이가 기부한 기금으로 1911년에 시작된 솔베이 회의는 양자 물리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계 정상급 물리학자들만을 초청해 3년마다 열렸던 솔베이 회의에서는 당시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들이 모여 주요한 물리학 주제에 대해서 발표하고 토론했다.

 

제5차 솔베이 회의는 1927년 10월 24일부터 29일까지 브뤼셀에 있는 솔베이 연구소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는 보어, 퀴리, 로렌츠, 플랑크,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드브로이, 보른 , 에렌페스트, 로렌츠,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당시 물리학계의 거물들이 모두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코펜하겐에서 온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1962)는 양자 물리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 해석이 양자 물리학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으로 현재 양자 물리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해석이다. 코펜하겐 해석의 내용은 이미 이탈리아의 코모에서 열렸던 볼타(Alessandro Volta, 1745~1827) 서거 100주년 기념 강연에서도 발표되었던 터라 회의에 참석했던 물리학자들은 그 내용을 이미 많이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 회의는 양자 물리학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의 성공을 확인하고 축하하는 회의가 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제 5차 솔베이 회의, 레오폴드 공원에서 촬영한 호의 참석자들
<출처: Jonathanriley at ko.wikipedia.com>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시킨,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논쟁

보어의 발표가 끝나자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해석을 조목조목 날카롭게 반박했다. 아인슈타인의 예상치 못한 반격으로 회의는 축제에서 토론으로 바뀌었다.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상보성 원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고, 자연현상은 확률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엄격한 인과법칙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여러 나라에서 온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반박에 대해 여러 나라 말로 시끄러운 논쟁을 벌여 어수선해졌다. 회의를 주관했던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로렌츠(Hendrik Antoon Lorentz, 1853~1928)는 질서를 회복하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마침내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오랜 친구이며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네덜란드의 라이덴 대학교수였던 에렌페스트(Paul Ehrenfest, 1880~1933)가 칠판 앞으로 걸어가 구약성서의 한 구절을 칠판에 크게 썼다. “신께서 지구 상의 모든 언어를 다르게 하셨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보고 크게 웃었다. 그 후 솔베이 회의는 아인슈타인이라는 골리앗과 보어라는 다윗의 싸움터가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해석이 왜 완전하지 못한가 하는 수많은 예를 들어 보였고 보어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반박해 나갔다.

 

에렌페스트의 집에서, 보어(앞)와 아인슈타인(뒤)(1930년, 에렌페스트 촬영)<출처: Fastfission at en.wikipedia.com>

에렌페스트의 집에서, 보어(앞)와 아인슈타인(뒤)(1930년, 에렌페스트 촬영)
<출처: Fastfission at en.wikipedia.com>


토론은 보통 아침식사 시간에 아인슈타인이 코펜하겐 해석에 분명히 반대된다고 생각하는 사고 실험을 제안함으로써 시작되었다. 회의에 참석한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사고실험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하루 종일 그 문제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 그리고 저녁식사 시간에는 보어가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새로운 사고 실험으로도 코펜하겐 해석을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곤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면 아인슈타인은 코펜하겐 해석을 무너뜨리기 위한 더 복잡한 사고실험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비슷한 논쟁이 며칠 동안 계속되자 에렌페스트는 아인슈타인에게 “당신은 당신의 적들이 상대성이론에 대해서 반대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새로운 양자이론에 반대하고 있습니다.”라고 충고했지만, 아인슈타인은 그의 친절한 충고마저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계의 존경 받는 지도자로 솔베이 회의에 도착했었다. 그러나 그는 외로운 사람으로 회의장을 떠났다. 그는 아직 상대성이론을 비롯한 초기연구로 존경을 받고 있었지만, 구시대의 인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끝까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인슈타인, 양자 이론의 위대한 개척자였으나…

양자 이론의 위대한 개척자 중의 한 사람인 아인슈타인이 양자 이론을 반대했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1921년에 아인슈타인이 수상한 노벨상도 ‘빛이 양자라는 작은 에너지 알갱이’ 라는 사실을 밝혀낸 광전효과 연구 공로로 받은 것이었다. 이것은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을 이끌어낸 중요한 연구로 양자 물리학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코펜하겐 그룹을 이끈 보어와 아인슈타인은 보어가 베를린에서 원자 이론에 대해 강의를 했던 1920년에 처음 만났다. 보어가 덴마크로 돌아간 후 아인슈타인은 그에게 “내 인생에서 당신처럼 같이 있는 것만으로 즐거움을 준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나는 이제 에렌페스트가 당신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보어는 이러한 칭찬에 대해 “당신을 만나고 당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내게 가장 큰 경험 중의 하나였습니다.” 라는 답장을 보내 아인슈타인에 대한 호감을 표현했다.


드브로이의 물질파 논문이 발표되었을 때 아인슈타인은 강력하게 그 이론을 지지했다. 그는 이 이론이 원자를 이해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슈뢰딩거 방정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좋은 평가를 했었다. 1926년 5월에 아인슈타인은 그의 친구에게 “슈뢰딩거가 양자 역학에 대한 놀라운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것에서는 깊은 진리의 냄새가 납니다.” 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이것이 양자 역학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우호적인 표현이었다.

 

 

끝내 확률적인 해석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인슈타인

얼마 후 막스 보른(Max Born, 1882~1970)이 슈뢰딩거의 파동함수를 확률 파동으로 재해석하면서부터 아인슈타인은 양자 물리학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모든 사건은 현재 상황과 물리 법칙으로 예측 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무작위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은 우리가 아직 이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의 법칙을 완전히 이해하고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미래에 일어날 모든 사건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그는 자연법칙에 확률을 개입시키는 것을 싫어했다. 이런 그의 생각은 "신이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주사위를 굴리지 않는다."라고 한 말에 잘 나타나 있다.

 

1927년 1월 아인슈타인은 슈뢰딩거 방정식에 대한 그의 새로운 생각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나의 가슴은 슈뢰딩거의 연구로 더 이상 뜨거워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과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쯤부터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주장하는 물리학자들과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 "신이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주사위를 굴리지 않는다."

아인슈타인 "신이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주사위를 굴리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반발한 코펜하겐 해석이란?

그렇다면 보어를 중심으로 한 코펜하겐 그룹이 제안했던 코펜하겐 해석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코펜하겐 해석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1. 입자의 상태는 파동함수에 의해 결정되며, 파동함수의 제곱은 측정값에 대한 확률밀도를 나타낸다.

2. 모든 물리량은 관측이 가능할 때만 의미를 가진다. 물리적 대상이 가지는 물리량은 관측과 관계없는 객관적인 값이 아니라

        관측 작용의 영향을 받는 값이다.

3. 서로 관계를 가지는 물리량들은 하이젠베르크가 제안한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4. 전자와 같은 입자들은 입자의 성질과 파동의 성질을 상보적으로 가진다.

5. 양자 도약이 가능하다. 양자 물리학적으로 허용된 상태들은 불연속적인, 특정한 물리량만 가질 수 있다.

        따라서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하기 위해서는 한 상태에서 사라지고 동시에 다른 상태에서 나타나야 한다.

 

이런 요약만 가지고는 코펜하겐 해석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양자 물리학 이야기는 이제 코펜하겐 해석의 내용 하나하나를 살펴보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에 대하여 알아볼 차례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양자 물리학이 등장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었다면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양자 물리학 자체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 인용된 내용은 필자가 번역하여 출판한 「괴델과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여러 책에서 인용했다는 것을 밝혀둔다.

출처 ㅣ 네이버캐스트

 

 

'재미있는물리 > 과학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빵의 화학-토스트는 갈색인데 호빵은 왜 흰색일까?  (0) 2013.10.05
고추와 캡사이신  (0) 2013.10.05
보어의 원자모형  (0) 2013.09.15
전기력  (0) 2013.09.15
휘어진 시공간  (0) 2013.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