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가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도는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글에서는 원자 구조와 전기력에 얽힌 세상의 신비에 대해 알아보자. |
손바닥으로 책상을 치면 왜 손바닥이 책상을 뚫고 지나가지 않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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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아주 간단한 실험 하나. 손바닥으로 책상 바닥을 쳐보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손바닥이 아픈 것 이외에는 아무 일도 없다고? 그럼 이렇게 물어보자. 왜 우리 손은 책상을 뚫고 지나가지 못하는가? 유치원 수준의 질문이라고 여기저기서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아마 당장 이런 대답을 하고 싶을 것이다. 책상이 이미 빽빽하게 아래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손바닥이 통과할 틈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책상도 우리 몸도 모두 원자로 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원자 하나하나는 쇠구슬처럼 속이 꽉 찬 알갱이가 아니다. 오늘의 과학 “원자와 원자핵”에서도 다뤘듯이 원자 가운데에는 작은 원자핵(또는 줄여서 핵)이 있고 주위에 전자가 돌고 있는데 핵의 크기는 전자가 떨어진 거리의 만 분의 일 정도에 불과하다. 만약 핵을 태양의 크기까지 매우 크게 확대한다면 전자는 태양에서 지구보다도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셈이 된다. | |
그리고 핵과 전자 사이는 빈 공간이다. 흔히 태양계를 광활한 우주 공간이라고 하지만 원자의 세계는 사실 그보다도 더 텅 비어 있는 것이다. 책상도 우리 몸도 모두 이렇게 텅 비어있다시피 한 원자들이 모여 있을 뿐이다. 원자들이 너무 작아서 우리에게 보이지 않을 뿐 비율로 따지면 태양계보다 원자가 더 텅 비어 있다. | |
수소 원자는 양성자 하나와 전자 하나로 되어 있고 그 사이에는 빈 공간이다.
양성자를 태양크기로 확 대하면 전자는 태양에서 지구보다도 더 멀리 있게 된다.
책상이나 우리 몸뿐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물질은 예외 없이 모두 텅 비어 있다. 물이나 기름 같은 액체는 말할 것도 없고 콘크리트나 쇳덩이, 납덩이까지도 원자로 이루어진 모든 것은 실제로는 빈 공간이 대부분이다. 이제 다시 질문. 빈 공간이 대부분인 우리 손은 왜 빈 공간이 대부분인 책상을 뚫고 지나가지 못하는가?
원자 가운데에 핵이 있고 전자가 핵 주위를 돈다고 했는데 전자가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핵 주위를 도는 것은 아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이 태양과 지구 사이의 중력 때문이듯 전자가 핵 주위를 도는 것도 핵과 전자 사이에 서로 잡아당기는 어떤 힘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그 힘이 태양계에서처럼 중력이 될 수는 없다. 왜냐면 뉴턴의 중력 법칙에 의해 핵과 전자 사이의 중력을 계산해보면 터무니없이 작게 계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험으로 알고 있는 원자의 크기 등이 나오려면 중력보다 무려 1039(조의 조의 천 조) 배나 큰 힘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핵과 전자 사이에는 중력 이외에 새로운 종류의 힘이 작용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 힘을 전기력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전기”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컴퓨터를 돌리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바로 그 “전기”이다. | |
양성자와 전자 사이의 전기력은 중력보다 1039 배나 강하다
전기력은 전하라고 하는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물체 사이에서만 작용한다. 사람이 남녀가 있듯이 전하에도 양전하와 음전하가 있어서 서로 다른 부호의 전하끼리는 잡아당기고 같은 부호의 전하끼리는 밀어낸다. 원자의 경우에는 핵과 전자가 서로 다른 부호의 전하를 가지고 있어서 잡아당기는 것이다. 물론 전자와 전자, 핵과 핵끼리는 서로 밀어낸다.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지만 학자들은 편의상 핵이 양전하, 전자가 음전하인 것으로 약속했다. | |
양전하와 음전하, 같은 부호끼리는 밀고 다른 부호끼리는 당긴다.
이제 다시 손바닥이 왜 책상을 뚫지 못하는지 생각해 보자. 손바닥이 책상에 가까워지면 손바닥의 원자와 책상의 원자가 가까워진다. 그런데 강한 전기력으로 인해 전자가 핵 주변을 매우 빨리 돌고 있기 때문에 원자는 전자가 핵을 감싸고 있는 것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따라서 손바닥이 책상에 가까워지면 손바닥의 전자와 책상의 전자가 먼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전자끼리 전기력이 매우 강하게 작용하여 서로 밀쳐내게 된다. | |
따라서 원자가 비록 우주공간처럼 텅 비어 있다 할지라도 손바닥의 원자가 책상의 원자를 지나쳐갈 수 없는 것이다. (사실은 이 설명은 살짝 단순화한 것이다. 더 정확한 설명을 하려면 양자역학이 필요하지만 이 글의 수준을 넘어가므로 생략한다.)
결국 책상을 때렸을 때 손바닥이 밀려나는 것은 책상이나 손바닥이 빈틈없이 물질로 빽빽하게 들어찼기 때문이 아니라 전기력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지구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고 땅바닥을 딛고 설 수 있는 것도, 연인들이 서로 포옹을 했을 때 한 몸(!)으로 합쳐지지 않는 것도 전기력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것이 제멋대로 찌그러들지 않고 일정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심지어 생명체가 생명 활동을 하는 것까지도 궁극적으로는 모두 전기력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가 보통 때 잘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모두 전기력이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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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이 포옹을 했을 때 한 몸으로 합쳐지지 않는 것도 전기력 때문이다. <출처: 영화 '행복' 중> | |
위에서 설명했듯이 전기력은 중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강한 힘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렇게 강한 힘의 존재를 실감하지 못하고 겨우 중력에 매여 사는 것일까? 전기력을 이용하면 때로는 가볍게 중력을 이기고 하늘을 날 수도 있지 않을까? 최소한 찌릿찌릿한 전기가 우리 몸을 흘러 다녀야 하지 않을까? 전기력이 별로 위력적이지 않아 보이는 이유는 핵과 전자의 전하가 부호는 다르지만 크기가 완전히 같기 때문이다. 원자 전체로는 전기적으로 중성인 것이다. 그래서 원자 두 개가 조금 멀리 떨어져 있으면 이들 사이에는 전기력이 거의 작용하지 않는다. 다만 핵과 전자가 구분되어 보일 정도로 두 원자가 충분히 가까워져야 비로소 전기력이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핵과 전자의 전하 크기가 서로 아주 조금이라도 달랐다면 우주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핵과 전자, 더 구체적으로는 양성자 한 개의 전하와 전자 한 개의 전하가 완전히 같은 크기일까?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우연히 그런 것일까? 어찌 보면 철학적이기도 한 이 질문에 대해서는 양자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을 결합한 양자장론을 통해 답을 얻을 수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한다. | |
중요한 것은 샘솟는 지적 호기심. 자연의 아름다움을 밝히려는 의지,포기하지 않는 노력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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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전 글 “원자로 구성된 나”와 이 글에서 원자 및 그와 얽힌 간단한 물리 사실들이 우주 전체에서부터 아주 사소한 일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보여주고자 하였다. 물리 지식의 수준으로만 보면 초등학교 내용도 많다.
세상은 원자로 되어 있고 원자는 다시 핵과 전자로 되어 있으며 전자는 음전기, 핵은 양전기를 띠고 있다...... 얼마나 밋밋하고 재미없는 내용들인가! 아마 시험을 보기 위해 그냥 아무 느낌 없이 연습장을 까맣게 물들이며 무작정 외웠던 악몽을 되살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물리가 아니다. 물리는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 그 결과를 얻기까지의 총체적 과정이다.
그리고 수많은 자연 현상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고 얼마나 아름답고 정교하게 설명될 수 있는지 찾아가는 여행이다. 그 안에는 인류의 위대한 상상력과 통찰력,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수많은 논리적 과정이 들어 있다. | |
떨어지는 사과에 의문을 품었다가 인류의 세계관을 바꿨던 뉴턴처럼, 빛보다 빨리 가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다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송두리째 뒤흔든 아인슈타인처럼, 미래의 누군가도 아주 당연하고 사소한 것에 의문을 품었다가 위대한 이론을 정립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샘솟는 지적 호기심과 자연에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밝혀내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노력일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