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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가 인가(人家)에 집을 짓게 된 사연

[강석기의 과학카페 175] 뻐꾸기 탁란에 대응하는 제비의 전략들

 

딱딱딱딱.

 

  한 달 전 쯤 아침 산책을 하려고 앞산 등산로 입구를 막 지나는데 어디선가 새가 부리로 나무를 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소리야 늘 나는 거지만 이날은 유난히 가까이서 들렸다. 문득 귀가 양쪽에 있는 건 음원의 방향과 위치를 파악하기 위함이라는 이론이 생각나 직접 실험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평일이라 주위에 아무도 없어 귀를 기울여 걷다보니 정말 소리가 점점 커진다.

 

  결국 눈앞에 있는 지름이 10cm쯤 되는 죽은 나무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 빙 둘러봐도 새는 안 보인다. 그런데 소리가 꼭 나무 속에서 나는 것 같다. 자세히 보니 필자 눈높이보다 20cm쯤 더 높은 지점에 지름 4cm 정도의 구멍이 뚫려있고 그 안에서 소리가 요란하다. ‘뭐야, 이 안에 새가 있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소리가 멈추더니 정말 작은 새 한 마리가 ‘뭔 일이야?’라는 듯 구멍에서 머리를 쏙 내밀더니 필자를 보고 깜짝 놀라 후루룩 날아간다.

 

  ‘너만 놀랐냐?’ 너무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필자도 깜짝 놀랐지만 약간 미안하긴 했다. 아무튼 그 조그만 새가 어떻게 나무 기둥 안에 그런 공간을 만들었는지 신기했다. 그 뒤로도 지나가다 몇 번 구멍을 봤지만 새는 보이지 않았다.

 

 

 

강석기 제공

  그런데 며칠 전 무심코 쳐다보니 구멍에서 새가 머리를 쏙 내밀고 있다(박새 같은데 어떤 종류인지 모르겠다. 옆 사진 참조). 필자가 지켜보는 것도 모르는지 부동자세다. 이때 주책없이 휴대폰이 울리는 바람에 녀석이 구멍 속으로 쏙 들어갔다.

 

  ‘왜 안 날아갔지? 안에 알이라도 있나…’ 저곳을 둥지로 삼은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나무가 등산로에서 불과 3~4m 거리에 있어 비록 구멍은 반대편에 있지만 필자처럼 할 일없는 등산객에게 들킬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반대편, 즉 구멍이 바로 보이는 방향에서 5~6m 지점에는 등나무 벤치가 있다. 이제 날이 더워지면 사람들이 쉬거나 싸온 음식을 먹으며 장시간 있을 텐데 역시 발각되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며칠, 필자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보면 늘 새가 구멍에 머리를 내밀고 있어 내심 놀랐는데, 지난 토요일 아침에는 빈 구멍이다. ‘결국 당했나?’ 걱정스런 마음으로 다가가 구멍을 둘러보고 있는데 안에서 ‘삐르륵 삐르륵’하는 작은 소리가 들린다(어차피 의성어로 소리를 재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짹짹’은 아니다). 벌써 새끼들이 부화했나보다. 어미가 먹이를 구하러 간 듯 해 얼른 자리를 피했지만 과연 저 녀석들이 둥지를 떠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산에는 온갖 새들 천지지만 이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새집을 발견한 건 처음이다. 물론 까치집이야 눈에 잘 띄지만 10m도 넘는 높은 나무 위에 지으니 맨 정신에 올라갈 일은 없다. 필자는 등산로 부근 나무의 사람 키 높이 지점에 매달아놓은 새집을 보면 ‘사람들도 참 성의가 없지. 새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저런데 들어가겠나?’라고 생각했는데, 이 녀석은 정말 머리가 ‘새대가리’일까.

 

  그런데 문득 야생 조류이면서(따라서 사람이 잡으려고 하면 얼른 도망간다) 과감하게 사람 손이 닿는 지점에 집을 짓는 새가 떠올랐다. 바로 제비다. 지금이야 도심에서는 제비를 볼 수 없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안양 같은 중소도시에는 제비가 꽤 있었다. 문득 35년 전 아련한 기억이 떠오른다.

 

  제비가 흔하던 시골에 살다가 경기도 안양으로 이사를 와서 3, 4년이 지난 어느 해 봄. 하루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 보니 제비가 둥지를 짓기 시작했다. 물론 제비가 있긴 했지만, 초가집이나 전통 기와집도 아닌 필자의 집에 둥지를 틀다니! 아침에 일어나서도, 학교에 다녀와서도, 저녁을 먹고 나서도 제비집을 보는 게 즐거움이었다.

 

제비는 인가에 집을 지음으로서 뻐꾸기의 탁란을 피할 수 있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제비는 인가에 집을 지음으로서 뻐꾸기의 탁란을 피할 수 있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하루는 제비 새끼 한마리가 둥지 밑으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그 녀석한테 파리도 잡아 먹이며 한참을 데리고 놀다 다시 올려준 기억이 난다. 가을이 오고 어김없이 제비는 둥지를 뒤로 하고 갈 길을 떠났다. ‘내년에 다시 올까?’

 

  이듬해 봄 어느 날, 놀랍게도 정말 제비가 돌아와 부산스럽게 집을 지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올해도 제비와 함께 지내게 돼 너무 신난 필자는 혹시나 제비가 물어온 박씨가 있나 주변을 살피기도 했지만 물론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 뒤 수년 사이 안양에서 제비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흥부전’ 스토리의 전환점이 되는 제비 추락 사건, 즉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의 부러진 다리를 흥부가 천으로 감싸 올려주고 그 보답으로 제비가 이듬해 봄 박씨를 물고 온다는 에피소드는 100% 상상력은 아닐 것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추측건대 제비는 알을 여러 개 낳기 때문에 새끼들 몸집이 커지면서 어미가 물어오는 벌레를 서로 먹으려고 자리싸움을 하다가 둥지에서 떨어지는 일이 종종 벌어질 것이다. 이 광경을 본 우리 조상 가운데 한 분이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흥부전의 에피소드를 창작해 냈으리라.

 

  아무튼 자기 집에 제비가 둥지를 틀게 허용했다면, 제비 새끼가 떨어졌을 때 흥부나 필자처럼 다시 올려줄 생각을 하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제비는 도대체 어떻게 인간이라는 이상한 포유류가 자신들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는 걸 파악해 과감하게 인가에 둥지를 틀 생각을 하게 됐을까.

 

●같은 종임에도 행동 패턴 달라

 

  학술지 ‘행동생태학&사회생물학’ 2013년 6월호에는 이에 대한 답을 주는 논문이 실렸다. 제비류 가운데 일부가 뻐꾸기의 탁란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 근처에 집을 짓는 과감한 선택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뻐꾸기 같은 새는 사람을 극도로 피하는 종이다.

 

흰털발제비(사진)나 귀제비는 둥지의 입구를 터널처럼 좁게 만들어 뻐꾸기의 탁란을 원천적으로 막는 전략을 쓴다. - 위키피디아 제공
흰털발제비(사진)나 귀제비는 둥지의 입구를 터널처럼 좁게 만들어 뻐꾸기의 탁란을 원천적으로 막는 전략을 쓴다. - 위키피디아 제공

  탁란(brood parasitism)은 작은 새들에게는 무척 심각한 문제다. 뻐꾸기가 알 하나만 낳아도 진짜 자기 알에서 부화한 새끼들은 한 마리도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미처 부화하지 못한 알이나 갓 부화한 새끼들을 밀어내 떨어뜨린 뒤 혼자 게걸스럽게 양모(養母)가 날라온 벌레를 먹는다. 따라서 작은 새들도 탁란을 막기 위한 전략을 개발했다.

 

  제비류 가운데 귀제비(Hirundo daurica)나 흰털발제비(Delichon urbica)는 둥지의 입구를 터널처럼 좁게 만들어 뻐꾸기가 알을 낳는 걸 원천적으로 막는 전략을 쓴다. 반면 제비(Hirundo rustica)는 사발형 둥지이기 때문에 탁란에 취약하다. 실제로 숲에 집을 지을 경우 탁란에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논문에서 프랑스 파리제11대 앤더스 뮐러 교수와 중국의 연구자들은 과거 어느 시점에서 제비 가운데 일부가 사람 사는 곳으로 와 집을 지었고, 그 결과 탁란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추정했다. 그리고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몇 가지 실험을 했다. 흥미롭게도 제비 가운데 유럽에 사는 무리는 인가에 집을 짓는 반면, 중국에 사는 무리는 숲에 집을 짓는다. 중국에 가까운 우리나라의 제비는 인가에 집을 지으므로 뒤바뀐 게 아닌가 하고 몇 번 들여다봤지만 그렇게 쓰여 있다. 과거 중국사람들은 집에 제비가 둥지를 틀면 걷어냈던 걸까.

 

  연구자들은 먼저 뻐꾸기가 정말 인가를 기피하는가를 조사했다. 저자들 가운데 뻐꾸기 전문가인 뮐러 교수는 논문에서, 인가에서 뻐꾸기를 목격한 게 단 한 차례로 1972년 덴마크의 한 축사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쓰고 있다. 당시 축사 안에서 뻐꾸기 한 마리가 제비 무리에 쫓기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간신히 창문을 통해 도망쳤다고 한다. 반면 야외에서는 제비가 뻐꾸기를 쫓는 장면을 150차례나 목격했다고 한다(1970~2012년). 

 

  한편 탁란의 경우, 저자는 덴마크에서 5000개가 넘는 제비집을 관찰했지만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른 연구자들의 보고를 보면, 이탈리아에서는 1.2%, 폴란드에서는 0.2%로 나타났다. 반면 숲에 둥지를 트는 중국의 경우 100개가 넘는 둥지에서 탁란이 발견됐다.

 

탁락은 작은 새에게는 심각한 피해를 준다. 진짜 새끼를 한 마리도 키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보다도 훨씬 큰 뻐꾸기 새끼를 먹이고 있는 개개비. - 위키피디아 제공
탁락은 작은 새에게는 심각한 피해를 준다. 진짜 새끼를 한 마리도 키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보다도 훨씬 큰 뻐꾸기 새끼를 먹이고 있는 개개비. - 위키피디아 제공

  연구자들은 다음으로 둥지에 모형 뻐꾸기의 알을 갖다 놓았을 때 이를 알아보고 내다 버리는 비율을 조사했다. 평소 탁란 피해를 보고 있다면 아무래도 식별력이 있을 것이다.

 

  예상대로 둥지입구가 터널형이라 탁란을 모르고 지내는 흰털발제비(덴마크)와 귀제비(중국)의 경우 각각 10회와 26회 모두 뻐꾸기 알을 알아보지 못했다. 인가에 둥지를 틀어 역시 탁란 피해가 거의 없는 제비의 경우도 세 곳 모두(덴마크 10회, 노르웨이 2회, 영국 8회) 뻐꾸기 알이 있는지 몰랐다. 반면 숲에 집을 짓는 제비의 경우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실시한 34회 가운데 15%에서, 중국 하이난성에서 진행한 50회 가운데 42%에서 뻐꾸기 알을 알아보고 내다버렸다.

 

  결국 같은 종의 제비라도 지역에 따라 뻐꾸기 탁란에 대해 다른 대응 전략을 세운 것이다. 그렇다면 유럽 사람들은 인가를 찾은 제비에게 호의적이었고 중국인들은 내쫓았던 것일까. 아니면 중국에 사는 제비 무리들은 인가를 찾을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무튼 분명한 것은 우리 조상들은 ‘강남 갔다 돌아 온’ 제비들을 기꺼이 반겼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이 산책로 바로 옆에 둥지를 튼 저 작은 새의 가족들에게도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