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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수시 합격자 8명. 1단계 서류 전형 통과 18명. 올 수시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일반고의 약진이 화제가 되고 있지만, 한영고는 몇 년째 탄탄한 성장을 이어왔다.
그러나 이 숫자가 한영고의 힘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반 꼴찌 학생도 학생부 종합 전형에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준 학교. 파란의 원천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과정을 이끄는 주역은 한영고 진로진학부의 3인방, 유제숙·박여진·김소라 교사.
가히 '3인3색' 이라 불릴 만한 팀이다. 리더십과 추진력, 자기 성찰에서 나온 섬세한 감성, 경제지 기자 출신의 학교 밖을 넘나드는 시선이 만나 한영고의 수시 프로그램이 설계된다.
한영고 교사 3인방의 '이보다 냉철하고 뜨거울 수 없는 수시 전략' 이야기.
우리가 그동안 아이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지레 가둬놓은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사진 왼쪽부터 박여진, 유제숙, 김소라 교사.
서류 간소화 제약 속 어떻게 '차별화' 할까
마케팅에 관심 많은 학생이 '고교 선택제에서 성공하는 고등학교 홍보 방안 연구'를 주제로 과제 탐구 보고서를 썼다. 이 보고서는 '수능 성적이 특목고나 자사고처럼 높지 않아도 일반고 중 독보적인 서울대 진학률이 한영고를 설명하듯, 강렬하게 기억될 만한 1등이되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이 학생은 지난해 서울대 미학과에 일반 전형으로 합격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내리는 학교의 평가만큼 객관적인 것은 없을 터.
한영고는 올해도 이 결실을 이어갔지만, 입시 환경이 변화하면서 준비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한영고 진로진학부의 수장, 유제숙 교사의 얘기다.

"서류 간소화가 올 수시의 가장 큰 변화인데, 학생부나 자기소개서에 제약이 많아진데다 증빙서류도 줄면서 아이들의 우수성을 어떻게 차별화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활동을 최대한 선별하고, 표현도 압축해야 했는데 교사 입장에서 열 걸음 차이 나는 아이를 이런 제약 속에선 한두 걸음밖에 차이를 보여줄 수 없으니까요. 학교 활동이 공유되면서 수시 프로그램이 보편화된 것도 난제였고요." 한영고 교사들이 선택한 전략은 아이들이 지원하려는 대학에 맞춰 중점 둘 내용을 이원화하는 것. 학생부 종합 전형 준비도가 높은 학생들이 주로 지원하는 상위권 대학은 지적 호기심을, 중·하위권 대학은 자기 주도 학습 역량을 전하는 데 주력했다.
서울대보다 뜨겁던 중·하위권 아이들의 도전
서울대는 숫자로 증명했으니 전략이 주효했던 셈이다. 분명 반가운 성과였으나,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 것은 중·하위권 아이들의 '자신감' 이다. 이번 수시에서 반 아이들이 1단계에 가장 많이 합격했다는 김소라 교사는 꼴찌 학생이 찾아와 학생부 종합 전형에 도전해보겠다고 의사를 밝힌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작년에도 담임을 맡은 아이인데, 워낙 수줍음이 많았어요. 당시 반 아이들이 모두 참여하는 학급 특색 활동을 앞에 나서서 굉장히 열심히 하더라고요. 이유를 들어보니 소심하고, 남 앞에 서지 못하는 성격을 고쳐보고 싶었대요. 이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었고, 성적으로는 합격하기 어렵다는 걸 알지만, 한번쯤 자신이 한 활동을 표현할 기회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거예요. 같이 준비해보기로 하고, 지금까지 한 활동을 정리해보니 정말 쓸 거리가 있더라고요. 삶이 녹아 있는 스토리니까. 결국 성적의 벽을 통과하진 못했지만, 이런면이 학생부 종합 전형의 장점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박여진 교사는 올 수시에서 6~7등급 학생들까지 학생부 종합 전형을 통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이 많다고 했다. 면접장에서 교수들이 "자기소개서를 정말 직접 썼나. 선생님이 써준 것 아니냐" 는 압박 질문을 던졌다는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 한영고의 활동이나 아이들의 역량이 남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학교 프로그램을 짜면서 점점 드는 고민은 모든 아이들에게 경험의 폭을 넓혀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점이었어요.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다 보니 학교 활동을 하나도 안 했을 것 같은 꼴찌 학생도 스포츠 클럽 활동을 하거나, 동아리에 소속되었거나, 학급 특색 활동을 함께하거나 어딘가에 소속돼 분명 뭔가 역할을 했더라고요. 처음 우리 반 아이들을 살펴보니 상위권 5명 정도만 빼고 6등급 이하가 3분의 2였어요.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더 많이 했죠. 지방에 경쟁률이 좀 낮은 대학은 어디인지, 통학이 가능한 대학은 어디인지 찾았고, 대학에서 학교에 설명회를 오면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질문을 준비해 답을 얻어냈어요." 조금만 자극을 주면 분명 아이들마다 끄집어낼 수 있는 스토리가 있다는 사실. 올 수시 결과를 지켜보면서 이들이 내린 결론이다.

지난 달 열린 한영고 학생들의 산출물 전시회 '한영 EDU-EXPO' 현장.
교사의 성찰에서 나온 팀워크, 빛을 발하다

김소라 교사가 올 초부터 40명이 넘는 반 아이들의 성적과 특징, 지원할 대학과 학과 전형까지 색색의 펜으로 손수 기록해간 문서들.
수시에서 강세를 유지하는 일반고는 프로그램을 이것저것 늘어놓기보다 체계를 갖춰 내실 있게 운영하는 공통점을 보인다. 한영고의 프로그램은 공자의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겨 하는 자만 못하다' 는 고사성어에서 따온 '지(知)·호(好)·락(樂)' 에 맞춰 설계됐다.

매일 아침 15분 동안 진행하는 '아침 독서' 와 수학 과목 1천 문제를 완성해 성적뿐 아니라 끈기와 도전 정신을 기르는 '수학 1000제' 활동, 세미나 형식으로 지적 호기심과 탐구 능력을 공유하고 토의 과정을 통해 소통 능력을 키우는 '또래 세미나', 수학·과학과 인문·사회 분야 영재교육을 실시하는 '영재 학급', 선후배 간의 지속적인 학습 멘토링으로 운영되는 '아우 멘토', 학생들이 누구나 자발적으로 신청해 토의·토론과 프로젝트 학습 등을 진행하는 '말하는 공부방', 학급마다 개성에 맞춰 전공 적합성과 협력 학습을 경험하는 '학급 특색 활동' 등이 씨줄과 날줄처럼 탄탄하게 짜였다.
이 프로그램 안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이룬 화학 작용이 진학 성과로 이어진 배경에는 진학지도부 3인방 교사들의 면면이 자리하고 있다.
경제 과목을 담당한 박여진 교사는 경제지 기자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양질의 교육 활동은 입시라는 목표만 겨냥해서는 지속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대학 때 경제·경영 연합 동아리 활동을 함께한 선후배들이 기업의 팀장급이 될 나이다 보니 만날 때마다 현장에서 느끼는 고민들을 전해 들어요. 엄마들이 전화해서 왜 이 부서에 배치했느냐 항의할 만큼 요즘 신입 사원들이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거예요.
또 기업이 원하는 글로벌 인재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타문화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란 얘기를 들으며 요즘 기업이 이런 고민에 빠졌구나, 그렇다면 대학에선 이런 사람을 뽑겠구나 패러다임을 넓게 보려고 노력하죠. 경제 단체나 한국과학창의재단 같은 다양한 단체에서 하는 연수도 부지런히 쫓아다니는 이유예요." 이렇게 박여진 교사가 학교 밖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면, 꼼꼼함을 타고났다는 국어 과목 담당 김소라 교사가 실무로 구현해낸다.

밑바탕에는 자신의 학창 시절 경험에서 나온 성찰이 있다.
"제가 주입식 교육만 받고 자란 세대잖아요. 학창 시절에 손을 잘못 드는 아이였고, 교사가 되고 나서도 자신감이 좀 없었어요. 어릴때 손을 못 드는 아이들은 어른이 돼서도 손을 못 들더라고요. 우리 아이들은 손들어 질문할 수 있고, 활동의 주체가 돼서 뭔가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이 쌓여야 자존감이 생길 거라 믿었거든요."

이렇게 아이디어가 완성되면 학교 구성원들의 협업 시스템을 끌어내 실행에 속도를 내는 역할은 유제숙 교사가 맡는다. 그에게도 전환점이 된 계기가 있다. 입학사정관 제도가 도입되면서 2009년 서울대 사범대학 교육연수원이 고교 진학 담당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수를 들으며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그때만 해도 대입 전형이 수능, 내신, 특기자 전형으로 나뉘었어요. 대학도, 교사도 숫자로만 평가해왔지만 이제 성적과 역량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겠더라고요. 학교를 바꾸지 않으면 아이들을 끌고 가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겠구나, 이제 입시의 흐름이 바뀌는 전환점에 직면했구나 싶었죠. 다행히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어요. 학교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제 기준에서 우수하다고 생각한 아이들이 온전히 평가 받는 모습을 보며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진정성과 열정, 아이들에게 요구하기 전 학교·대학 먼저
학생부 종합 전형이 확대되면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요구하는 단어는 '진정성' 과 '열정' 일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학교마다 성과를 가르는 한 끗 역시 여기에서 출발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김소라 교사의 얘기다.

"우리 학교 아이들이 모두 1학년 때부터 열정적으로 시작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3년 동안 반짝거리는 마음을 잃지 않으면 결과로 나타나는 인생의 '정의' 를 보여주려고 노력하죠. 1~2학년 담임을 맡을 때 아이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은 봤지만, 입시에서 어떻게 성과로 이어질지 체감이 오지 않았어요. 올해 처음 고3 담임을 맡으면서 느낀 건 아이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입시에 모든 걸 쏟아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학교가 전반적으로 받쳐준다는 점이에요. 공부만 하다 대학에 가도 스무 살을 잘 시작할 수 있겠지만, 여러 활동에서 부딪쳐보고, 보물찾기 하듯 손에 뭔가를 쥐어본 경험이 스무 살을 시작할 때 자신을 좀더 자신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자산으로 남겠죠. 학생부 종합 전형은 그릇이 되어야 할 테고요."
상위권뿐 아니라 원하는 학생들은 누구나 '질문할 수 있는 힘' 을 키울 수 있도록 운영의 불편을 감수하고 '말하는 공부방' 프로그램을 자유로이 신청하는 형태로 기획한 박여진 교사가 "정작 나는 교사연수 때 질문도 안 하고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더라. 아이들의 참여를 자신 있게 끌어내려면 교사인 내가 먼저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에 이제는 내가 먼저 질문하는 연습을 한다. 우리도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 같다" 고 말을 보탠다.

현장의 노력에 답해야 하는 것은 대학의 몫이다. 인재를 선발하려는 준비가 아직은 부족한 대학 역시 많기 때문이다. "수시 합격 결과를 보면 준비된 대학이 우수한 아이들을 뽑는다. 수시에서 여섯번의 지원 기회가 있는데, 점수 서열상 훨씬 높은 대학은 합격하면서 한 단계 아래 대학은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대체로 성적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인상을 받는데, 우수한 인재를 놓치지 않으려면 대학의 선발 시스템과 입학사정관의 역량이 그만큼 준비되어야 할 것" 이라는 게 유제숙 교사의 지적이다.

그 사이 책상 한쪽에 김소라 교사가 올 초부터 40명이 넘는 반 아이들의 성적과 특징, 지원할 대학과 학과 전형까지 색색의 펜으로 손수 기록해간 문서들이 눈에 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만큼 그의 기록은 점점 더 빼곡해졌다. 내내 논술 전형만 준비해온 학생에게 수시 원서 접수 직전 '학생부 종합 전형도 한 번 넣어보라' 고 권하는 학교와 차이를 이 종이꾸러미에서 발견한다. 이 에너지를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가. 우리에게 남은 과제다.
한영고의 진학 상담 출발점 전공 이해도 높이기
한영고의 진학 상담 시스템은 학생들의 역량과 적성을 지원하려는 전공과 최대한 맞춰나가는 데서 출발한다. 이를 두고 '합격자 수를 높이려 의도적으로 과를 낮춘다' 는 오해의 시선도 있지만, 최종 결정은 언제나 학생들의 몫이라고. 공대에 가고 싶어도 수학에 자신이 없다면 대학 이후의 적응에 어려움을 겪게 마련. 아직 진로 성숙도가 완성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좋아하는 것을 잘할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도록 돕는 일이다.
관건은 교사의 끊임없는 관찰과 지속적인 상담. 이들 교사 3인방은 "대학에 개설된 학과 홈페이지를 연구하고, 관련 분야 연구소 등을 자주 들여다본다. 교사가 전공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면 알수록 아이들을 다양하게 진학지도할 수 있다" 고 말한다. 이 노력은 올 수시에서 이렇게 결실을 맺었다.

+ 댄스 동아리 활동을 경영학부와 연결한 합격생
댄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춤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 사회에 나가면 자립 기반을 만들기 어렵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비보이는 한류 문화를 이끄는 자원이지만, 실제 수익을 내는 장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고. 이를 경영학적으로 모델링하고 싶은 꿈을 동아리 활동과 연결 지어 풀어냈다.
예체능 동아리 활동도 충분히 강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

+ 수학 문제를 도형으로 풀어내는 능력, 조경학 전공으로
고등학교에 와서 성적이 떨어지며 자신감을 잃었지만, 수학 시간에 어떤 문제가 나와도 그림과 도형으로 풀어내는 능력은 탁월했다.
학생부 동아리 활동에 기록된 '골드버그장치'(단순한 과제를 하기 위해 복잡한 기계를 만드는 것) 를 설계한 경험과 그림에 관심이 많은 특성을 살려 설계를하고 싶은 꿈을 이룰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를 찾아냈다.

+ 사회 현상 바라보는 날카로운 관찰력, 법·행정·외교 배울 자율전공학부로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관찰력이 돋보였던 학생. 사안을 놓고 단순 해법을 내놓기보다, 저변에 있는 인간의 근원적인 행동 양식에 눈을 돌렸고, 다문화등 국제적인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학교프로그램에 적극 참여 해온 강점을 살려 일반고지만, 국제 인재를 선발하는 특기자 전형으로 자율전공학부에 합격한 사례.

 

출처 : 미즈내일